Depot/일상다반사

[회상] 8. 초딩들의 막걸리 파티

zzixxa 2009.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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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할머니의 환갑이이셨습니다.
제 나이는 한국식 나이로 11살....초딩 4학년때의 일이죠.

지금처럼 수명이 많이 늘어난 때도 아니고 또 먹을 게 풍족했던 때도 아니었는지 할머니의 환갑잔치는 온 동네의 잔치가 돼버렸습니다. 온 동네 어른들은 마당에 둘러앉아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고 시끌벅적하게 하루를 보내시고 계셨습니다.

그럼 저는....
저도 평소에 어울려 다니던 한규랑 광수형이랑 같이 실컷 놀고먹고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막걸리가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온동네 잔치인지라 막걸리를 엄청나게 큰 통에 가득담아 뒤안에 놔둔걸 제가 알고 있었거든요.

한 번 먹어보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본 우리는 뒷담을 넘기로 했습니다. 도둑마냥..ㅋ
아무래도 어른들이 알면 혼낼 것 같아서요.

뒷담을 넘어서... (우리집 담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뒤안으로 들어가 큰 주전자에 막걸리를 가득담아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셋이서 그걸 다 마셔버렸습니다.
대충 주전자가 요즘나오는 1.5리터 PT병으로 3~4병 정도는 들어갈만한 크기였는데 어차피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그걸 죄다 마셔버렸으니 몸이 온전했을까요. 셋이서 헬레레... 해가지고 이러저리 싸돌아다니다가... 가끔 토역질도 하고...ㅋ

암튼 저녁무렵이 넘어서 주전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동네 어른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가시고 마당은 텅비어 있었습니다. 술먹은 건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주전자를 한 켠에 쳐박아 놓고 아무렇지 않게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작은아버지가 저를 바로보시더니 깜짝 놀랄 말을 하게 아니겠습니까.

이 녀석 술먹었네...

허걱!! 어떻게 알았지???

잠시 당황하고 있는데 죄다 나를 보고 웃으시는 겁니다.
방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다섯이나 되는 작은아버지들 커플까지 바글바글 했거든요...

얼른 안방을 빠져나와 내 방에 가서 잠시 누웠는데 눈을 떠보니 아침입니다...ㅎㅎ

그 후로도 저는 한가지가 되게 궁금했었습니다.

어떻게 내가 술 마신 걸 알았을까??? 하는거죠.
나중에야 술마시면 얼굴이 빨개지고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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