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역사이야기
박정희 전대통령과 만주국 그리고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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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통의 아들인 박씨가 울 아버지를 친일파 명단에서 빼주세요~~ 하고 말했다가 깨갱하고 말았다는 기사가 보인다. 신경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사람이 박정희다. (만주일보 1942.3.24) 그러니까... 만주국이 국군 간부 양성을 위해 건국하고 바로 봉천(요새는 심양)에 2년제 간부훈련소(사관학교)를 세웠지 아마? 이곳이 그 유명한 봉천 군관학교이고 조선인들은 4기생 때부터 입교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고. 여기 나오신 분들 중에 유명한 양반을 대충 따져보면.. 국무총리를 지낸 정일권, 초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신현준 등이 5기생 숙군 때 박정희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백선엽은 이곳 9기생 박통이 예과를 마친 신경군관학교는 봉천군관학교 후신으로, 1939년 수도인 신경에 세워진 정식 4년제 였고. 조선인 출신으로는 김동하, 윤태일, 이기건, 방원철, 박임항, 이주일 최창언 등 1기생이 13명, 김묵, 이재기, 박정희, 이한림, 김재풍 등 2기생이 11명, 최주종 등 3기생이 2명, 예관수, 장은산 등 4기생이 2명, 강문봉, 황택림 등 5기생이 5명, 김동훈, 육굉수, 김윤근, 김학림 등 6기생이 9명, 마지막 기수인 7기생은 김광식 등 4명 등 총 44명.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박통이 5.16을 모의, 주도했을 때 주체로 참여하였가 나중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뒤에는 걸림돌이 되면서 박통 친위세력에 의해 이른바 '알래스카 토벌작전'으로 숙청당하는 비운을 겪은 사람들이고. 박통은 2기에 수험번호 15번으로 응시해서 15등으로 합격했고 동기는 일본넘 240명, 만주인 228명, 그리고 조선인 12명 등 총 480명. 위에 잠깐 언급했는데 백선엽씨가 구명운동을 펼쳐서 목숨을 건진 적이 있는 박통의 죄명은 바로 친일이다. 현재 박씨가 언급한 친일인명사전이 아니더라도 이미 60여년 전에 친일파로 도장 꽝- 찍었다는 얘기지. 그래도 나는 설마했다. 헌제처럼 일본군 장교는 했지만 친일은 아니다... 라고 말할 줄은 정말 몰랐다. 식민지시대에 강압에 못이겨 일본군 중장을 한 왕족과 천황폐하만세를 외친 백성들을 멀쩡히 앞날이 보장된 학교 선생 때려치우고 일본군에 들어간 박통과 동급으로 봐야 맞는거니? 진정 그런거니? 혹시라도 딴소리할까봐 굳이 이것저것 찾아가며 주절이 주절이 옮겨적는 나도 힘들다. 그만 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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