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역사이야기

탕론 - 정약용

zzixxa 2009.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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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론(湯論)

탕(湯)임금의 정통성

탕왕(湯王)이 걸(傑)을 추방한 것이 옳은 일인가. 신하로서 임금을 친 것이 옳은 일인가. 이것은 옛날의 법도요 탕임금이 처음으로 열어놓은 일은 아니다. 신농씨(神農氏) 후손들의 덕(德)이 쇠진하여 제후(諸侯)들이 서로 공벌하자, 헌원씨(軒轅氏)가 무기를 동원하여 조향(朝享)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니, 제후들이 모두 귀의하여 왔다. 그리하여 신농씨와 판천(阪泉)의 들판에서 전쟁을 벌였고 세 번 싸워 승리를 거둠으로써 드디어 신농씨를 대신하여 헌원씨가 황제가 되었는데,(<史記> [五帝本記]에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하로써 임금을 친 것을 죄주려면 헌원씨가 우두머리 죄인이 되니, 탕왕에게 어떻게 그 죄를 묻겠는가.

무릇 천자(天子)의 지위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하늘에서 떨어져 천자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땅에서 솟아나 천자가 되는 것인가. 5가(家)가 1린(鄰)이 되고 5가에서 장(長)으로 추대한 사람이 인장(鄰長)이 된다. 5린(鄰)이 1리(里)가 되고 5린에서 장으로 추대된 사람이 이장(里長)이 된다. 5비(鄙)가 1현(縣)이 되고 5비에서 장으로 추대된 사람이 현장(縣長)이 된다. 여러 현장들이 다같이 추대한 사람이 제후(諸侯)가 되는 것이요, 제후가 다같이 추대한 사람이 천자(天子)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자는 여러 사람이 추대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대저 여러 사람이 추대해서 이루어진 것은 또한 여러 사람이 추대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5가가 화협하지 못하게 되면 5가가 의논하여 인장을 바꿀 수가 있고, 5린이 화협하지 못하면 25가가 의논하여 이장을 바꿀 수가 있고, 구후(九侯)와 팔백(八伯)이 화협하지 못하면 구후와 팔백이 의논하여 천자를 바꿀 수가 있다. 구후와 팔백이 천자를 바꾸는 것은 5가가 인장을 바꾸고 25가가 이장을 바꾸는 것과 같은 것인데, 누가 신하로서 임금을 쳤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 바꿈에 있어서도 천자 노릇만 못하게 할 뿐이지 강등(降等)하여 제후로 복귀하는 것은 허락하였다. 때문에 주(朱)를 당후(唐侯)라 했고 상균(商均)을 우후(噳侯)라 했고 기자(杞子)를 하후(夏侯)라 했고 송공(宋公)을 은후(殷侯)라 했다. 완전히 끊어버리고 후(侯)로 봉(封)하여 주지 않은 것은 진(秦)나라가 주(周)나라를 멸망시키고부터이다. 이리하여 진나라의 후손도 후(侯)에 봉해지지 못한 채 끊겨버렸고, 한(漢)나라의 후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제후로 봉해지지 않은 채 끊겨버리는 것을 보고는 모두들 “무릇 천자를 치는 자는 불인(不仁)한 자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어찌 실정(實情)이겠는가.

뜰에서 춤추는 사람이 64명인데, 이 가운데서 1명을 선발하여 우보(羽葆)를 잡고 맨 앞에 서서 춤추는 사람들을 지휘하게 한다. 우보를 잡고 지휘하는 자의 지휘가 절주(節奏)에 잘 맞으면 모두들 존대하여 ‘우리 무사(舞師)님’ 하지만, 그 우보를 잡고 지휘하는 자의 지휘가 절주에 맞지 않으면 모두들 그를 끌어내려 다시 전의 반열(班列)로 복귀시키고 유능한 지휘자를 재선(再選)하여 올려놓고 ‘우리 무사님’ 하고 존대한다. 그를 끌어내린 것도 대중(大衆)이고 올려놓고 존대한 것도 또한 대중이다. 대저 올려놓고 존대하다가 다른 사람을 올려 교체시킨 사람을 탓한다면, 이것이 어찌 이치에 맞는 일이겠는가.

한(漢)나라 이후로는 천자가 제후를 세웠고 제후가 현장을 세웠고 현장이 이장을 세웠고 이장이 인장을 세웠기 때문에 감히 공손하지 않은 짓을 하면 ‘역(逆)’이라고 이름하였다. 이른바 역이란 무엇인가. 옛날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하였으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한 것은 순(順)이고, 지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세웠으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세운 것은 역이다. 그러므로 왕망(王莽), 조조(曹操), 사마의(司馬懿), 유유(劉裕), 소연(蕭衍) 등은 역이고, 무왕(武王), 탕왕(湯王), 황제(黃帝) 등은 현명한 왕이요 성스러운 황제(皇帝)이다.

이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걸핏하면 탕왕과 무왕을 깍아내려 요순보다 못하게 만들려 한다면, 어찌 이른바 고금(古今)의 개변(改變)된 내용을 통달한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장자(莊子)는 이런 말을 하였다.

“여름 한철만 살고 가는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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