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역사이야기

원목 - 정약용

zzixxa 2009.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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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原牧)

통치자는 백성을 위하여 있는가?

백성이 통치자를 위하여 생존하는 것인가?

백성이 미곡과 포사(布絲)를 바쳐서 통치자를 섬기며 백성이 거마와 종복을 내어서 통치자를 맞고 보내며, 백성이 고혈을 짜내어 통치자를 살찌게 하니 백성이 통치자를 위하여 생존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통치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태초에는 백성뿐이었으니 어찌 통치자가 있었겠는가?

백성은 자유스럽게 무리를 지어 살았다. 어떤 사람이 이웃과 다투게 되었는데 결말을 짓지 못했다. 그들 중에 한 노인이 있어서 공정한 말을 잘하므로 그에게 가서 바른 판결을 받았다. 온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그에게 복종하고 그를 추대하여 존경하며
이정(里正. 마을의 어른)이라 일컬었다.

또 몇 마을의 백성이 그 마을과 마을끼리 다투어 해결을 짓지 못했다. 그들 중에 한 노인이 있는데 준수하고 지식이 많으므로 그에게 가서 바른 판결을 받았다. 그 몇 마을은 모두 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며 그를 추대하여
당정(黨正. 한 구역의 어른)
이라 불렀다.

또 몇 구역의 백성들이 다투어 해결을 짓지 못했다. 그들 중의 한 노인이 현명하고 덕이 있으므로 그에게 가서 바른 판결을 받고, 몇 마을이 그에게 복종하고, 그를
주장(州長. 고을의 장)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몇 고을의 장이 한 사람의 장을 추대하여 국군(國君)
이라 불렀다.

또 몇 나라의군주가 한 사람을 추천하여 우두머리로 삼고
황제
라고 불렀다.

황제의 근원은 마을의 어른에게서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는 백성을 위하여 있게 되었다.
이 시대에 있어서는 그 마을의 어른은 백성의 희망에 따라 법을 제정하여 구역 어른에게 올렸고, 그 구역의 어른은 백성의 희망에 따라 법을 제정하여 고을의 장에게 올렸고, 그 고을의 장은 나라의 임금에게 올렸으며, 그 나라의 임금은 황제에게 올렸다. 그러므로 그 법은 모두 백성에게 편리했다.

후세와 와서 어떤 사람이 스스로 황제가 되어서 자기의 아들 및 아우 그리고 추종자들을 봉하여 제후를 삼았다. 제후들은 자기와 친한 사람을 뽑아 고을의 장을 삼고, 그 고을의 장은 자기와 친근한 사람을 추천하여 구역의 장과 마을의 장을 삼았다.

이와 같이
황제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법을 제정하여 제후에게 주며, 제후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법을 제정하여 그것을 고을의 장에게 주고, 고을의 장은 구역의 장에게 주고, 구역의 장은 마을의 장에게 주었다. 그런고로 이러한 법은 모두 임금을 존중하고 백성을 낮추며 아랫사람들은 웃 사람을 따라
마치 백성이 통치자를 위해 생존하는 것처럼 되었다.

지금의 수령은 옛날의 제후에 해당한다. 그들의 주택, 거마의 공급과 의복과 음식의 봉양과 좌우에서 시중드는 관속 및 남녀노비, 사령들치고 그들의 생활은 나라 임금에 못하지 않다. 그들의 권능은 족히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으며, 그증의 형벌의 위력은 족히 사람을 겁나게 할 수 있다. 이에 이르러
그들은 오만하고 자존하고 방종 안일하여 통치자가 해야 할 것을 잊어 버렸다.

어떤 한 백성이 다투다가 그것을 공정하게 판결해 줄 것을 바라면 한 발로 차 버리듯이 말하기를 '어찌 이와 같이 시끄러우냐?'하며 또 한 백성이 굶어 죽게 되면 말하기를 '네 스스로 죽을 따름이로다'라고 하는 것이다. 백성이 만일 미곡과 포사를 바치지 아니하면 그들은 회초리와 곤장으로 백성을 때리고 차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본 후에야 그친다. 그들은 날마다 문서 장부에다 고쳐 쓰고 덧붙여 써서 돈과 필목을 징수해 간다. 그것으로 밭과 집을 장만하고 또 권세 있는 재상과 귀족에게 뇌물을 바쳐 자신의 자리를 길이 보장한다.

그런고로
백성이 통치자를 위하여 생존하고 있다고 말하나 이것이 어찌 이치에 합당하겠는가?

 
통치자는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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