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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한량으로 살고싶은 의원이 너무 유능함

한량으로 살고싶은 의원이 너무 유능함 004화. 소문은 피보다 빨리 번진다

by zzixxa 2026. 2. 9.

004화. 소문은 피보다 빨리 번진다

아침이 왔다.
어제보다 조금 나았다.

강진혁은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엄지, 검지, 중지.


어제보다 힘이 들어갔다.

팔을 들어 올렸다.
팔꿈치까지 굽혀졌다.
어제는 손목까지였다.

'회복 중이다.'

천천히지만, 확실하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여러 명.

멈춰 섰다.
속삭이는 소리.

"여기가 그 의원이라던데."
"확실해?"

여자 목소리였다.
중년.

"확실하다니까. 어제 최 씨네 딸아이가 여기서…"

말끝이 흐려졌다.
더 작은 목소리로 이어졌다.
잘 들리지 않았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완전히 가지 않았다.
모퉁이쯤에서 멈춘 것 같았다.
여전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진혁은 천장을 봤다.
어제와 같은 천장.
나무 서까래.
검게 그을린 흔적.

'시작됐구나.'

아이가 살았다는 이야기.
생각보다 빨리 퍼졌다.

진혁이 느끼기엔 너무 빨랐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어젯밤 일이었다.

그런데도 벌써 사람들이 왔다.
문 앞까지 왔다가 돌아갔다.

그는 아직 몸도 온전하지 않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상체를 일으키는 것도 버거웠다.

그런데도 소문은 퍼졌다.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이번엔 다른 사람.
남자였다.
나이가 좀 있는 목소리.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잠깐의 침묵.

"강 의원… 계십니까?"

조심스러운 목소리.

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는 것도 힘이 들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저… 어제 최 씨네 딸아이가 나았다고 들었습니다."

대답이 없자,
남자는 잠깐 기다렸다.

"혹시… 우리 아이도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혁은 눈을 감았다.

'지금은 안 된다.'

아직 움직일 수 없었다.
환자를 볼 수 없었다.
진찰도, 처치도 불가능했다.

남자는 조금 더 기다렸다.
대답이 없자, 발소리가 멀어졌다.

문밖이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완전히 조용하지는 않았다.
멀리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봤어?"
"아니, 문이 닫혀 있던데."
"정말 거기가 맞아?"

말들이 작았다.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였다.
믿고 싶지만, 쉽게 믿지 못하는 얼굴들.

진혁은 문 안쪽에서 그 기척을 느꼈다.
발소리.
속삭임.
문을 열지 못하고 서성이는 그림자.

해가 높이 떴다.
햇빛이 창호문 틈새로 들어왔다.
먼지가 빛 속에서 떠다녔다.

문밖의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머뭇거리는 사람.

"강 의원이 정말 고쳤다던데."
"침으로 숨을 틔웠다더라."
"말도 안 돼. 저 양반이?"

마지막 말에 진혁의 눈이 떠졌다.

'저 양반이.'

그 말투.
익숙했다.
무시와 의심이 섞인 어조.

이 몸의 기억이 스쳤다.
단편적인 장면들.

환자가 더 아파졌다는 말.
약값을 돌려달라는 목소리.
문 앞에서 고함치던 사람.

'실패했던 의원.'

이 몸의 주인.
강 의원.
그는 실패했다.

여러 번.

그때,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천천히.

노파가 들어왔다.
어제 봤던 사람.
환자의 가족 중 한 명.

"의원님…"

목소리가 떨렸다.
감사와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어젯밤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노파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보자기에 싸인 것.

"변변찮지만…"

보자기를 풀었다.
떡이었다.
백설기.

"이것밖에 없어서…"

진혁은 그것을 봤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목구멍이 메말라 있었지만.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노파가 떡을 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문밖을 힐끗 봤다.

"의원님…"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망설이는 얼굴.

"밖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다들… 소문을 들었나 봅니다."

노파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당연했다.
어제까지 돌팔이 취급받던 의원.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노파가 말을 멈췄다.
다시 문밖을 봤다.

"너무 기대하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진혁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소문은 늘 두 가지 방향으로 간다.
신격화되거나,
돌팔이로 몰리거나.

그리고 대개는 후자였다.

노파는 잠깐 머뭇거리다 일어섰다.

"아이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진혁은 떡을 봤다.
손을 뻗었다.
떨렸지만, 닿았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씹었다.
삼켰다.

목구멍이 메말라서 넘어가기 힘들었다.
물을 마셨다.
어제 남은 물.
미지근했다.

천천히 먹었다.
한 조각, 두 조각.

기력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문밖에서 또 소리가 났다.
이번엔 다른 목소리.
젊은 남자.

"여기가 그 제세당이라던데요?"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응, 그런데 문이 닫혀 있어."

"혹시 환자 안 받는 거 아니야?"

"글쎄… 어제는 받았다던데."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문 앞에 섰다.

두드리지 않았다.
그냥 서서 기다렸다.

잠깐 후,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중에 다시 와봐야겠다."
"그래."

진혁은 떡을 다 먹었다.
배가 조금 채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없었다.

상체를 일으켜 보려 했다.
팔에 힘을 주었다.
천천히 일어났다.

현기증이 왔다.
시야가 흔들렸다.

잠깐 멈춰 있었다.
호흡을 고르고.

다시 힘을 주었다.
등이 벽에 닿았다.

앉은 자세가 되었다.

'조금 나아졌다.'

어제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약장을 봤다.
서랍들.
붓글씨.

당귀.
천궁.
백작약.

읽히는 순간, 용도가 떠올랐다.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

'내가 할 수 있는 건 뭔가.'

지금 당장은 많지 않았다.
직접 환자를 볼 수도 없었다.
손을 댈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어제는 했다.
문 너머로.
목소리만으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문밖에서 또 소리가 났다.
이번엔 여러 명.

"정말 여기야?"
"응, 최 씨가 그랬어."
"믿을 수 있어?"

잠깐의 침묵.

"최 씨 딸아이는 정말 많이 아팠잖아."
"맞아. 죽을 뻔했다고 했어."
"그런데 하루아침에 나았다는 거지?"

"그게… 좀 이상하긴 해."

"강 의원이 뭘 한 거래?"
"잘 모르겠어. 침을 놓았다는 말도 있고…"
"침? 강 의원이 침을 놓을 줄 알았어?"

말끝이 의심으로 물들었다.

"예전에는 약도 제대로 못 지었다던데."

"맞아. 우리 시어머니도 여기서 약 먹고 배탈 났었어."

"그랬어? 난 몰랐네."

목소리들이 섞였다.
기대와 의심.
호기심과 경계.

진혁은 그 목소리들을 들었다.
하나하나.

'너무 빠르다.'

소문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소문은 언제나 양면이었다.
칭찬과 비난.
신뢰와 의심.

지금은 칭찬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언제든 뒤집힐 수 있었다.

한 번만 실패하면.
한 명만 더 아프게 하면.

'돌팔이.'

그 말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문밖의 사람들이 떠났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하지만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오고, 가고, 머뭇거리고.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문밖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들어가 봤어?"
"아니, 문이 닫혀 있던걸."
"의원이 아픈가?"

"아니면 일부러 안 받는 건가."

"왜 안 받아? 돈 벌 기회인데."

"글쎄…"

진혁은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 나서면 위험했다.
몸도 온전하지 않고,
이 몸의 지식도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

환자를 보려면,
제대로 봐야 했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한 번의 실수.
그것만으로도 끝이었다.

'조급하게 굴면 안 된다.'

하지만 소문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대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문밖에서 또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더 낮은 목소리.
나이 든 남자.

"강 의원, 예전엔 저렇지 않았는데."

그 말에 진혁의 눈이 떠졌다.

예전.
그 단어가 묘하게 걸렸다.

"뭐가 달라진 거야?"

"모르지. 그냥… 느낌이 다른 것 같아."

"느낌?"

"응.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잠깐의 침묵.

"예전엔 더 절박해 보였어."

진혁은 그 말을 곱씹었다.

절박.

이 몸의 기억이 스쳤다.
단편적인 장면들.

빈 약장 앞에서 고민하던 모습.
환자를 놓칠까 봐 급하게 움직이던 손.
실패할 때마다 무너지던 얼굴.

'절박했구나.'

살아남으려고.
의원으로 인정받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실수가 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던데."

"뭐가?"

"최 씨 말로는… 침착했다고."

"침착?"

"응. 급하지 않았대. 차분하게 지시했다고."

진혁은 그 말을 들었다.

'침착.'

응급의학과에서 배운 것.
급할수록 차분하게.
순서를 지켜야 한다.

"그게 가능해? 강 의원이?"

"나도 믿기지 않아. 그런데 최 씨가 거짓말할 이유도 없잖아."

"그렇긴 한데…"

발소리가 멀어졌다.

진혁은 천장을 봤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졌다.

문밖이 조금 조용해졌다.
하지만 완전히 조용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 지나갔다.
멈췄다.
힐끗 봤다.
떠났다.

소문은 계속 퍼지고 있었다.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진혁은 눈을 감았다.

'내일은 나서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소문이 너무 커지기 전에.
기대가 너무 높아지기 전에.

하지만 두려움도 있었다.

'실패하면 끝이다.'

이 몸의 주인처럼.

아니, 그보다 더 심할 것이다.
한 번 올라간 기대는.
떨어질 때 더 아프니까.

문밖에서 마지막 발소리가 들렸다.
멀어졌다.

밤이 왔다.

소문은 피보다 빨랐다.
그리고 소문은,
예상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