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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한량으로 살고싶은 의원이 너무 유능함

한량을 살고싶은 의원이 너무 유능함 003화. 몸보다 판단이 빨랐다

by zzixxa 2026. 2. 9.

 

003화. 몸보다 판단이 빨랐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나무가 울리는 소리.
숨이 가쁜 발소리.

쿵쿵쿵.

"의원 나으리!"
"안에 계신 거 압니다!"

목소리가 절박했다.
떨리고 있었다.

강진혁은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태로 일어나면, 바로 쓰러진다.

근력 저하.
탈수.
영양 결핍.

상체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기립성 저혈압.
의식 소실 가능성.

'지금은 무리다.'

그런데도 머릿속은 조용했다.
정확했다.

문 너머의 기침 소리가 다시 들렸다.
깊었다.
폐 아래쪽에서 긁어내는 소리.
가래가 묵직하게 걸린 음색.

콜록, 콜록.

기침 한 번이 길었다.
세 박자.
들숨, 기침, 날숨.

'단순 감기는 아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쉰다.
쌕—
천명음.
기도 폐쇄음.

내쉴 때 길게 끌린다.
후—
호기 연장.
폐쇄성 질환 의심.

호흡 간격이 불규칙하다.
빠르다, 느리다, 다시 빠르다.
산소 부족 반응.

'하부기도 문제.'

피 섞인 가래.
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묵직했다.
점도가 높다.
농성 객담.

열감이 느껴지는 기침.
숨소리에 습기가 많다.
염증 반응.

호흡음의 질감.
거칠다.
수포음 가능성.

'폐렴. 혹은 그보다 아래.'

기관지염.
폐렴.
폐농양.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처치가 필요하다.

문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더 세게.

쿵쿵쿵쿵.

"의원 나으리, 제발…!"
"숨을 못 쉽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공포가 섞여 있었다.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목 근육이 뻣뻣했다.
움직일 때마다 관절이 삐걱거렸다.

약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서랍들.
붓글씨가 다시 눈에 밟혔다.

천궁.
백작약.
숙지황.
맥문동.
행인.

글자를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용도가 자동으로 배열됐다.

천궁, 활혈행기.
백작약, 진통진경.
숙지황, 보혈자음.
맥문동, 윤폐청심.
행인, 기침 완화, 담 배출.

'지금 쓸 건 아니다.'

행인은 쓸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약을 달일 시간도 없고, 환자 상태도 확인하지 못했다.

진혁은 이 사실이 더 이상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지금 필요한 게 뭔지'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약이 아니라, 순서가.

'자세.'

환자는 누워 있으면 안 된다.
가래가 기도를 막는다.
가래 배출이 필요하다.
상체를 세워야 한다.

반좌위.
혹은 좌위.
중력을 이용한 배액.

'온기.'

이 정도 기침이면 몸이 식어 있다.
추운 날씨.
찬 공기 흡입.
말초 혈관 수축.
호흡 효율 저하.

체온 유지 필요.
담요.
온수.

'수분.'

가래가 묽어야 배출된다.
탈수 상태면 점도가 높아진다.
배출 불가.
기도 폐쇄 악화.

따뜻한 물.
조금씩, 자주.

'지금 당장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치하면 밤을 못 넘긴다.'

판단은 이미 끝나 있었다.

문밖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섞였다.
이번엔 더 나이가 든 목소리였다.
여자였다.
떨리고 있었다.

"강 의원, 애가… 애가 자꾸 파래집니다."

청색증.
말끝이 떨렸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산소 교환 문제.'

입술 청색증.
손끝 청색증.
산소 포화도 저하.

폐포 환기 장애.
가스 교환 장애.

'빨리 해결해야 한다.'

진혁은 이를 악물었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는 아예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힘이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순서다.'

머릿속에서 응급실이 펼쳐졌다.
하지만 여기는 응급실이 아니었다.

산소도 없고,
모니터도 없고,
약도 없다.

석션도 없고,
앰부백도 없고,
제세동기도 없다.

그런데도 순서는 같았다.

기도.
호흡.
순환.

ABC.

Airway.
Breathing.
Circulation.

응급처치의 기본.
어디서든 같다.

'기도부터.'

기도가 막히면 호흡이 안 된다.
호흡이 안 되면 순환이 무의미하다.
순서를 지켜야 한다.

그는 바닥에 손바닥을 짚었다.
손이 떨렸지만, 버텼다.
손목에 체중을 실었다.
팔꿈치가 펴졌다.

상체를 반쯤 일으켰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시야가 한순간 좁아졌다.
주변이 어두워졌다.

혈압 강하.
뇌 혈류 감소.

'지금 쓰러지면 끝이다.'

진혁은 호흡을 끊었다.
들이마시지 않았다.
내쉬지도 않았다.

발살바 수기.
흉강 내압 증가.
정맥 환류 증가.
혈압 일시 상승.

잠깐.
딱 한 박자.

몸이 중심을 찾았다.
시야가 다시 선명해졌다.

그는 낮게 말했다.
문밖을 향해.

"문… 열지 마."

목소리가 갈라졌다.
하지만 또렷했다.

문밖이 조용해졌다.
숨소리만 들렸다.
거친 숨소리.

"안으로 들어오면…"

말끝을 고르며, 진혁은 말을 이었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줄어든다."

사실이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환자를 직접 볼 수 없다.
손을 댈 수도 없다.
진찰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시는 할 수 있다.

잠깐의 침묵.
사람들이 숨을 삼키는 기척.
누군가 코를 훌쩍였다.

"대신."

진혁은 말을 이었다.
천천히, 분명하게.

"말한 대로 움직여."

잠깐의 정적.

문 너머에서 급히 대답이 돌아왔다.
"예, 예! 말씀만 하십시오!"

남자 목소리였다.
처음 문을 두드린 사람.
다급했지만, 안정되었다.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진혁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머릿속에서 처치 순서가 완전히 정렬됐다.

첫 번째, 자세 교정.
두 번째, 체온 유지.
세 번째, 수분 보충.
네 번째, 기도 확보 유지.
다섯 번째, 경과 관찰.

약은 그 다음이다.
상태가 안정되고 나서.

지금은 생명 유지가 우선이다.

"환자를…"

진혁이 말을 시작했다.
목소리가 안정되었다.

"지금 어떤 자세로 있느냐."

문밖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누, 누워 있습니다!"

'잘못됐다.'

"일으켜 세워라."

"예?"

당황한 기척.

"상체를 일으켜."

진혁은 말을 이었다.
더 천천히, 더 분명하게.

"벽에 기대게 하든, 사람이 받쳐주든."
"상체를 세워야 숨을 쉴 수 있다."

잠깐의 침묵.
움직이는 소리.
사람들이 환자를 움직이는 소리.

"이, 이렇게 하면 됩니까?"

"상체가 바닥과 몇 도 각도냐."

"예…?"

진혁은 다시 물었다.
"꼿꼿이 앉았느냐, 아니면 비스듬히 기댔느냐."

"비, 비스듬히… 기대 있습니다."

"더 세워라. 꼿꼿이."

"예!"

움직이는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누군가 환자를 받쳐주는 소리.

기침 소리가 달라졌다.
조금 짧아졌다.
횟수가 줄었다.

'효과가 있다.'

"이제 등을 두드려라."

"예?"

"환자 등."

진혁은 설명했다.
"위에서 아래로. 손바닥으로. 세게."

"이, 이렇게요?"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톡톡.

"더 세게."

"예!"

퉁퉁.

가래 배출음이 들렸다.
콜록.
퉤.

"계속해라."

"예!"

진혁은 눈을 감았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체를 일으킨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웠다.
팔이 떨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제 물을 준비해라."

"물이요?"

"따뜻한 물."

진혁은 말을 이었다.
"뜨겁지 않게. 미지근하게."

"예!"

발소리가 멀어졌다.
물을 구하러 가는 소리.

진혁은 다시 물었다.
"환자 얼굴 색이 어떠냐."

남아 있던 사람이 대답했다.
여자 목소리.
나이 든 여자.

"아, 아직 파랗습니다…"

"입술만이냐, 얼굴 전체냐."

"입, 입술이 제일 심하고… 손끝도…"

"손이 차가우냐."

"예, 얼음장같습니다."

'말초 순환 장애.'

"담요를 가져와라. 두껍고 따뜻한 것으로."

"예!"

또 다른 발소리가 멀어졌다.

진혁은 환자의 호흡 소리에 집중했다.
여전히 거칠었다.
하지만 조금 나아졌다.

천명음이 줄었다.
호흡 간격이 조금 규칙적으로 변했다.

'지금 당장은 괜찮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폐렴이 맞다면,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여러 명.

"물 가져왔습니다!"
"담요도 있습니다!"

"환자에게 담요를 덮어라. 어깨부터 발끝까지."

"예!"

"물은…"

진혁이 말을 멈췄다.
생각을 정리했다.

"한 번에 조금씩만 마시게 해라."
"절대 급하게 마시면 안 된다."
"사레 들면 더 위험하다."

"예!"

"입술을 적시는 정도로. 천천히."

"알겠습니다!"

진혁은 귀를 기울였다.
물 마시는 소리.
환자가 삼키는 소리.

기침이 나왔다.
콜록.

하지만 이전보다 약했다.

"계속 조금씩 주되, 절대 서두르지 마라."

"예!"

진혁은 팔이 떨리는 걸 느꼈다.
한계가 가까웠다.
더 이상 상체를 지탱할 수 없었다.

천천히 몸을 눕혔다.
등이 바닥에 닿았다.

현기증이 다시 왔다.
시야가 흔들렸다.

'조금만 버텨라.'

숨을 고르며, 진혁은 다시 물었다.
"환자 얼굴 색이 조금 나아졌느냐."

잠깐의 침묵.
확인하는 소리.

"예… 예! 조금 나아진 것 같습니다!"

목소리에 희망이 섞였다.

"입술 색은."

"아직 파랗긴 한데… 전보다는…"

"좋다."

진혁은 눈을 감았다.
피로가 밀려왔다.

"지금부터는 지켜봐야 한다."

"예?"

"급격히 나빠지지 않는지."
"숨이 다시 가빠지지 않는지."
"얼굴이 다시 파래지지 않는지."

"알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진혁은 말을 멈췄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은 움직일 수 없다.
약도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다시 문을 두드려라."

"예! 알겠습니다!"

문밖이 조금 조용해졌다.
환자의 호흡 소리만 들렸다.
여전히 거칠었지만, 안정적이었다.

진혁은 천장을 봤다.
나무 서까래.
흔들리는 등잔불 그림자.

몸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하지만 판단은 이미 환자 곁에 가 있었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알았다.

이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