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잠결에 마눌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가만 들어보니 4학년인 둘째가 돼지저금통에 있던 만원짜리 세 장을 꺼내 이리저리 쓰고다닌 모양입니다.
그러고보니 예쁜 모양의 수첩과 거울 그리고 잡다한 것들을 자랑하던 어제의 일이 떠오릅니다.
왜 저는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질 않았을까요.
잠시 이불 속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마눌님의 화살이 저를 향해 꽂혀 옵니다.
듣고 있는 거 다 아는데 왜 안나와?
들었으면 나와서 혼내줄 생각은 안하고 뭐하는 거야?
(스피커 볼륨 최대한 올리고 베이스 음은 없앤 상태에서 상상해주세요. ^ ^;)
할 수 없이 어기적거리며 거실에 나가보니 둘째가 핀셋으로 저금통에서 지폐를 꺼내려고 애를 씁니다.
행여나 남의 돈을 몰래 가져와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마눌이
진짜로 저금통에서 꺼냈는지 확인해 보는 모양입니다.
저금통에서 꺼낸 거야 그렇다쳐도 남의 돈을 가져왔다면 엄청난 잘못이니까요.
둘째를 보고 있노라니 마눌이 저에게 수련용 목검을 건내 줍니다.
(이걸로 때리라고???)
마눌을 슬쩍 바라보니 한마디 얹어 주십니다.
뭐해? 혼내지 않고....
.... 너 또 이럴거야?
마눌의 성화에 못이겨 목검을 들고 한껏 화난 얼굴로 둘째를 바라보니 겁을 먹은 듯 아닌 듯 합니다.
이 녀석이...잘못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한 번 더 으르렁거려보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어보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목검으로 아이를 때리긴 힘들다 여겼는지 마눌이 슬쩍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막대를 건내줍니다.
다시는 하지 말라고 때리는 거야. 피하지 말고 맞아...
맞아야 되는 이유를 말하고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는데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잘못을 빕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할께요.
......
...... 처음입니다.
아이에게 매를 들어 엉덩이를 때리는 일은...
사실 자기 저금통에서 자기 돈을 꺼낸 게 왜 잘못이냐고 아이가 물어도 할 말이 딱히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화를 내며 매까지 들며 아이의 씀씀이를 바로잡는다는 핑계를 앞세운 것은
어쩌면 어려워질지도 모르는 앞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날을 함께 한 회사가 어려워져도 마땅히 대안이 없다는 게 한심스럽고,
한두군데에서 말하는 스카웃 제의에 귀가 솔깃해지며 희망을 거는 제가 한없이 민망해집니다.
매를 맞아 아팠을 아이를 생각하며 하루 종일 답답한 가슴을 안고 지냈지만
퇴근을 해서 집에 들어가도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할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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