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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조가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준(선위) 뒤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에 대한 딴지.

zzixxa 2008.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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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에 나온 기사 내용입니다. 먼저 한 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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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이순재, '이산' 떠난다

조선의 제 21대왕 영조(1694~1776)를 연기한 탤런트 이순재가 MBC 월화 특별기획 '이산'에서 퇴장한다.

극중 노년기에 접어든 영조가 매병을 앓는 설정으로 혼신의 열연을 보여주고 있는 이순재는 영조가 정조(이서진 분)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머지 않아 생을 마감하는 역사적 배경에 따라 드라마에서 자연스레 퇴장하게 된다.

21일 37회가 방영된 가운데 영조의 죽음은 40회를 전후해 다뤄질 예정이다.

최고령 연기자임에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으로 그동안 극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이순재는 이에 따라 5개월 만에 '이산'을 떠나게 된다.

드라마의 한 관계자는 "정조가 즉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조가 생을 마감한다.

머지 않은 시점에 영조의 죽음이 다뤄지며 이후부터는 조선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룩한 정조의 업적과 본격적인 일대기가 그려질 예정이다"고 전했다.

그냥 그저 그렇게 드라마 내용을 담은 기사 내용입니다만 분명히 할 건 분명히 해야 겠기에 주제넘게 기사에 딴지를 걸어봅니다.

기사 내용에 보면
.... 영조가 정조(이서진 분)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머지 않아 생을 마감하는 .... 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말대로라면 영조가 정조에게 왕위를 선위한 다음에 상왕으로 있다가 생을 마감했다는 말이됩니다. 그쵸?
안그래도 어제 드라마 예고편을 보면서 마눌님이 그러더군요.

정조는 영조가 살아있을 때 왕이 돼? 아니면 죽은 다음에 왕이 돼?

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영조가 죽고나서 왕이 되지...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그게 아닙니다. 왕위를 물려준 뒤... 라는 말을 아주 당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순간 저는 당황합니다.

어라? 아닌데? 내가 잘못 알았나????

그래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봅니다.

영조51년 12월 7일 장문 가운데 품지를 청한 것 중 일부를 동궁에 보내게 하다
하교하기를, “이번 일이 있고 난 뒤로 내 마음이 불안정하다. 충자(沖子)가 처리하는 것을 본 연후에야 내 마음이 펴질 수 있겠다. 장문(狀聞) 가운데 품지를 청한 것이 있으면 2, 3장(張)을 동궁으로 들여 그 답을 보겠으니, 승지는 가지고 와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영조51년 12월 7일 왕세손이 품청에 대한 명을 중지해 줄 것을 청하다 (전략)삼가 신이 방금 정원에 내린 비망기(備忘記)를 보았는데, 지극히 인자하신 우리 성상께서 어찌 이런 하교를 하셨습니까? 신은 참으로 황송하고 기가 막혀 그 까닭을 살피지 못하겠습니다. (중략)소자의 간절함을 굽어 따르시어 특별히 품청(稟請)에 대한 명을 중지하소서. (중략) 이번의 이 하교에 대하여 비록 청정(聽政)이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백관의 조참(朝參)이 없고, 또한 대리(代理)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장문(狀聞) 몇 장에 불과한데, 네가 어찌 동요하는가, 네가 어찌 동요하는가? 국초(國初)에 이런 예(例)에 의거하여 승지로 하여금 동궁(東宮)에서 품결(稟決)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는 내가 이곳에서 목격한 것인데, 이번의 하교가 바로 이것이다. 네가 과연 받들어 행한 연후에야 저녁밥을 먹을 수 있고, 오늘밤에 잠을 잘 수 있는데, 무슨 마음으로 상소하는가? 나를 생각하고, 내 뜻을 본받으라.

영조51년 12월 7일 왕세손이 재소하다 (전략)답하기를, “아! 조선이 할아비와 손자에게 서로 의지하고 있는데, 한결같이 어찌 네 할아비를 곤란하게 하느냐? 어제 밤에는 잠을 잘 잤는데, 오늘밤은 네가 곤란하게 하니, 어찌 눈을 붙이겠는가?” 하고는, 이어서 도승지에게 명하여 비답을 전유(傳諭)하게 하였다.

영조51년 12월 7일 왕세손이 삼소하다 (전략)답하기를, “네 삼소(三疏)를 살펴보았는데, 어찌 한결같이 나를 곤란하게 하느냐, 어찌 한결같이 나를 곤란하게 하느냐? 이제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하여 우리 나라가 다시 안정되었으니, 충자는 참으로 3백 년 종사(宗社)를 본받고 열조(列朝)의 성덕(聖德)을 저버리지 말라.(중략)” 하고, 하교하기를, “도승지는 하교를 가지고 전하라.” 하였다. (후략)

영조51년 12월 7일 대리청정이 안 된다면 왕위를 물려 주겠다고 하교하다 약방 도제조 김상철(金尙喆), 제조 채제공(蔡濟恭), 부제조 이택진(李宅鎭)이 구대(求對)하니, 하교하기를, “구저에 가서 불러 보겠다.” 하였다. 옥당(玉堂)의 상번·하번이 구대하니, 하교하기를, “이는 전례(前例)가 없었다고 여기는 까닭에 성급하게 굴지만, 전례가 있는 청정(聽政)으로 거행할 것 같으면, 나는 마땅히 조용히 처신하겠다.하고, 전교하기를, “만약 이 하교를 따르지 않을라치면 대소 공사(公事)를 정원(政院)에 머물러 두라. 마땅히 전위(傳位)하는 하교를 내리겠다.” 하였다.

영조51년 12월 7일 대리 청정의 절차를 밟게 하다 하교하기를, “모든 일은 명분을 바르게 한 연후에야 말이 순하게 되는 것이다. 아! 복정(復政)한 후에 내 마음이 어떠하였겠는가? 어제의 하교는 전례가 없다고 하였는데, 청정은 광명 정대(光明正大)하고 전례가 분명하게 있으니, 해조로 하여금 예에 의거하여 잘 알게 하라. 잘 알게 한 연후에 내가 내국(內局)에 수응(酬應)하겠다.” 하였다.

영조51년 12월 7일 왕세손에게 서정을 대리 청정하게 하다 임금이 왕세손에게 명하여 서정(庶政)을 대리 청정하게 하였다. 하교하기를, “이제서야 겨우 순조롭게 결말이 났다. 83세가 다 되어 충자(沖子)가 나에게 효도함을 보게 되니 천만 다행이다. 구저로 가겠다는 하교는 잠시 보류하라.” 하였다.

영조51년 12월 8일 왕세손이 네번째 상소하다 삼가 신이 어제 내린 비망(備忘)을 보건대, 청정하라는 명이 계셨고, (후략)

영조51년 12월 10일 왕세손의 청정하례를 받다 임금이 경현당에 나아가 왕세손의 청정 하례(聽政賀禮)를 받았다. 왕세손이 백관을 거느리고 사배례(四拜禮)를 행하였다. 임금이 기쁨을 나타내는 노래를 지으니, 악공이 노래로 불렀다. 또 시 한 구(句)를 짓고, 입시한 여러 신하들에게 화답해 올리게 하였다. (후략)

영조 52년 3월 5일 묘시에 임금이 경희궁의 집경당에서 승하하다
묘시(卯時)에 임금이 경희궁(慶熙宮)의 집경당(集慶堂)에서 승하(昇遐)하였다.(후략)

정조 즉위년(영조 52년) 3월 10일 경희궁의 숭정문에서 즉위하다 영종 대왕 52년(1776) 3월 병자일(丙子日)에 영종이 훙(薨)하고, 6일 만인 신사일(辛巳日)에 왕이 경희궁(慶熙宮)의 숭정문(崇政門)에 즉위하였다.(후략)

쫙 훑어봤습니다만 영조 생전에 정조가 즉위했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저 대리청정이 전부일 뿐입니다. 비록 드라마라고 방패를 내세워도 조금만 신경쓰면 누구나 알 일 정도는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딴지질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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