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역사이야기

조선시대 부부 대등한 관계였다

zzixxa 2007.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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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네 항상 내게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이 글은 1998년 안동대학교 박물관 발굴팀이 경북 안동 정상동 이응태(李應台·1556∼86) 무덤에서 발견한 편지 내용이다.

1586년 30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레 요절한 남편을 비통해하는 부인의 애절한 심경뿐 아니라 16세기 조선시대 부부 간 호칭과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황문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조선시대 언간(순한글 편지) 자료의 부부 간 호칭과 화계(話階·청자를 대우하는 등급)’를 분석한 결과 조선시대 남편과 아내는 서로 대등한 호칭을 사용하는, 존중하고 조심하는 관계였다고 2일 발간된 한중연 반년간 학술지 ‘장서각’에서 주장했다.

황 교수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16∼19세기 조선시대 편지글들을 살펴보면 남편은 아내를 ‘자내, 게, 게셔, 마누라’로, 아내 역시 남편을 ‘자내, 게셔, 나으리’로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편이 아내를 ‘자내’(오늘날 ‘자네’)라고 호칭한 경우는 16∼17세기 편지에서 주로 등장하는데 16세기에는 ‘하소’, ‘하소서’ 등의 종결형과 주로 사용됐고, 17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하옵소’나 ‘하압’(‘하소’+자신을 낮추는 ‘삽’)체와 공존했다.

특히 이때 ‘자내’ 앞에는 한두 자 여백을 통해 존대를 표시하는 격간법(隔間法)이 사용돼 16세기보다 아내에 대한 대우가 격상됐음을 보여준다.

16세기 이응태 묘에서 출토된 부인의 편지에서도 ‘자내’라는 호칭은 하소체와 결합돼 있어 이 무렵 부부 간에는 대등한 호칭과 화계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황 교수는 주장했다. 그러나 17∼18세기 와서는 남편은 아내에게 ‘하옵소’체를, 아내는 남편에게 ‘하압’체를 사용한 사례도 일부 발견돼 차등적인 화계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18세기 이후 남편은 아내에게 ‘자네’ 대신 ‘그대’를 의미하는 ‘게’, ‘게셔’ 등을 주로 사용했다. 추사 김정희가 1840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천안서 그대(게셔) 모양을 보니 그렇지 아니할 것 아니오나 그대가 그리하여 큰 병이 나시면 말이 되겠습니까”란 대목이 나온다. 밀양 박씨(1700∼37)는 남편에게 “그대(게셔) 오셔도 근심을 많이 하시기에 잠깐이라도 근심을 덜어 드리옵자”라고 했다.

황 교수는 배우자를 ‘게셔’로 호칭한 남편과 아내는 모두 종결체로 ‘하압’류를 사용해 서로 대등한 호칭과 화계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왕실 여성을 일컫던 ‘마누라’라는 용어가 19세기 후반 사대부 언간에서도 사용된 예를 처음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흥선대원군이 1882년 부인에게 “그간 망극지사를 어찌 만 리 밖에서 간단한 편지로 다 말하오리이까. 마누라께서는 상천(上天)이 도우셔서 환위를 하셨거니와 내 어찌 살아 돌아가길 바라겠습니까”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 무렵 아내는 벼슬하는 남편을 호칭할 때 1894년 오정선의 아내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발견되는 ‘나으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황 교수는 “요즘엔 시어에만 사용되는 그대란 표현이 18세기엔 남편, 아내 모두 상대방을 지칭할 때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면서 “호칭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경심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부부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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