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조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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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덕분에 정조를 둘러싼 여인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정조에게는 정비인 효의왕후 외에 4명의 후궁이 있었다. 숫자로 보면 적잖은 숫자이지만 후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효의왕후는 노론 청명당 계열 청풍김씨 김시묵의 딸이다. 노론 청명당계는 당시 노론을 주도하던 가장 핵심적인 세력. 10살의 나이에 11살의 정조를 만났으며, 무척 사이도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상상 임신까지 겪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 들인 후궁이 원빈 홍씨. 홍씨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가였던 홍국영의 동생이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후사 문제가 벌어지자 가장 먼저 나선 인물이 바로 홍국영. 그는 외척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여동생을 후궁으로 만들지만, 궁에 들어온 지 1년도 못돼 죽어버린다. 이에 격분한 홍국영은 동생의 죽음을 효의왕후의 독살로 단정하고, 왕실의 권위를 망각한 채 오만방자한 행동을 일삼는다. 이후 판관 윤창렬의 딸인 화빈 윤씨가 들어오지만 역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화빈 윤씨는 드라마 '이산'에 등장하는 성송연과 정조의 만남을 이뤄지게 하는 매개 역할로 그친다. 드라마에 나오는 성송연의 역할은 극화된 사실에 불과하다. 정사의 기록에 따르면 성송연, 즉 의빈 성씨는 화빈 처소의 궁녀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야사 등에 등장하는 기록과 추측들로 이뤄진 것일 뿐이다. 정조의 다른 후궁들은 모두 간택된, 쉽게 말하면 정치적 관계에 의해 궁에 들어온 인물임에 비해 의빈 성씨는 유일하게 정조의 승은을 입은 후궁이었다. 이런 이유로 의빈과 정조의 로맨스가 드라마에 등장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의빈 성씨는 정조의 첫 아들 문효세자를 낳게 된다. 하지만 문효세자는 5살의 어리디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다시 임신한 의빈마저 시름시름 앓다가 임신 5개월의 몸으로 세상을 등지고 만다. 실록에 다르면 정조는 일련의 죽음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죽음에 대해 지극히 애통해하고, 의빈와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에 자주 거동했다고 한다. 정조의 삶에서 다른 측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할머니인 정순왕후다.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정조의 태도나 능행에서 보여준 혜경궁의 행동으로 미뤄볼 때 오히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막을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그의 아들만이라도 보존하기 위한 고육지책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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