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의 유래
여러 문헌에 의하면 태극기가 우리나라의 국기로 처음 사용된 것은 1882년이었다. 고종 황제가 수신사 박영효가 대외적으로 일본에서 처음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일제 침략 36년 동안 처절한 압박과 함께 천태만상의 변형을 거치다가 1949년 10월 정부에서 현재 모습의 태극기를 제정하였다. 이러한 유래에도 불구하고 무슨 영문인지 1882년에 그렸다는 최초의 태극기 실물이나 그림이 보존되지 않아 태극기의 역사가 단절되어 왔었다. 그 동안 역사학계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최초의 태극기를 찾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1997년 8월 8일 동경 도립 중앙도서관에서 최초의 태극기 그림과 관련 기사가 게재된 1882년 10월 2일자 시사신보(時事新報)를 발견하여 1997년 광복절에 공개함으로써 115년만에 그 실체를 역사의 사실로 확인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전해진 바에 의하면 최초의 태극기는 박영효(朴泳孝)가 창안·도안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화두의 시사신보(時事新報)가 발견됨으로써 최초의 태극기는 고종(高宗) 황제가 직접 그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기사의 내용을 보면, 고종(高宗) 황제가 일본 수신사로 떠나는 박영효(朴泳孝)에게 태극기의 도안, 재질, 도형의 설명, 그리는 방법까지도 직접 언급하고 지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박영효(朴泳孝)의 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4각형태의 흰색 바탕에 폭 부분 5분지 2를 중심 삼아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을 칠하고 네 귀퉁이에 4괘가 바라보도록 만든 새 국기를 임시 숙소 (고베의 니시무라야) 옥상에 휘날림으로써 국왕의 명령을 다 받들었노라!” 라는 내용이 곧 최초의 태극기를 사용하였음을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고종 황제가 처음 국기로 사용하게 한 태극기는 1392년 고려말 공양왕 때 제작된 범종(梵鐘)에 새겨져 있는 태극 모양과 4괘 도형이 정확히 일치한다. 고종 황제는 태극기를 새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태극 모양을 그대로 대한제국 국기로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고려말 공양왕 때 제작된 범종의 태극기는 높이 35cm, 직경 30cm로써 고종이 그려낸 태극기와 같은 형식이다.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일본 수신사로 갈 때에 처음 사용되었고, 1883년에 고종 임금이 태극 4괘가 그려진 기를 국기로 사용한다고 왕명으로 공포함으로써 태극마크가 우리나라 국기로 확정지어졌다. 그러나, 당시에는 태극기는 4괘의 위치는 지금과 동일 하지만, 태극의 음양 모양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 태극의 음양 배치가 위.아래로 되어 있지 않고 좌.우로 되어 있었는데, 좌측은 빨강색이고 우측은 파랑색이었다.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부에 걸려 있는 태극기도 음양 배치가 위.아래로 되어 있지 않고 좌.우로 되어 있으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행사 당시 중앙청에 내걸린 태극기도 음양 배치가 위.아래로 되어 있지 않고 좌.우로 되어있다. 1949년 국기 제정 위원회가 구성되어, 1949년 3월 25일 음.양의 배치 안을 확정한 후에야 지금과 같은 태극기의 태극 모양이 확정된 것이다. 태극기의 국기 봉도 우리나라의 꽃인 무궁화 봉오리를 상징한 것으로 하고, 색깔은 국기 깃 면의 색깔과 조화를 이루도록 금색으로 하도록 하였으며,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告示) 제2호로 공포함으로써 우리나라 태극기는 완전한 통일 규격으로 국내 외에서 자랑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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