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역사이야기

광평대군이 암살당했다?

zzixxa 201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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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평대군이 암살당했다?
그것도 독살도 아니고 시해라면...
사극이 역사책일 수는 없지만 좀 많이 심합니다.

이리저리 비틀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요즘 트랜드라고는 하지만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의 설정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오해하지 맙시다.
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명성황후가 이미연인줄 아는 어느 이십대 아가씨의 대답이 또다시 귓가에 아른거립니다.


거두절미하고 조선왕조실록 모셔옵니다. 


광평 대군 여의 졸기


세종 106권, 26년(1444 갑자 9년) 12월 7일(임자) 
1번째기사 



광평 대군 이여(李璵)가 졸(卒)하였다. 

여의 자는 환지(煥之)이고 호는 명성당(明誠堂)이니, 임금의 다섯째 아들이다. 홍희(洪熙) 원년 을사(乙巳) 5월 임신일(壬申日)에 나서, 선덕(宣德) 7년 임자(壬子) 정월에 광평 대군에 봉하였다. 

(중략)

임금이 무안군(撫安君)의 후사(後嗣)가 없음을 추념(追念)하여 입후(立後)를 시켜서 그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여(璵)가 창진(瘡疹)을 앓고 있었는데, 임금이 심히 근심하여 여러 방법으로 치료를 했으나 끝내 효과를 얻지 못하고 죽으니, 임금과 중궁이 몹시 슬퍼하여 3일 동안 조회를 거두었다. 
 

(중략)


아들이 하나이니 이름은 이부(李溥)이다. 처음 여의 병이 위독할 때 임금이 밤을 새워 자지 않았고, 끝내 죽으매 종일토록 수라를 들지 아니하니, 도승지 이승손 등이 아뢰기를,
“성상께서 오랜 병환이 있으신데 애통하심이 예절에 지나치십니다. 청하옵건대, 수라를 드시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 마땅히 그리 하겠노라.”
하였으나, 날이 저물어서야 죽만 조금 마실 뿐이었다. 

백파령(白波令)에게 명하여 상례를 주관해 보게 하고, 첨지중추원사 정척(鄭陟)과 변효문(卞孝文)·예빈 소윤(禮賓少尹) 민완(閔瑗)으로 호상(護喪)하는 일을 시키고, 또 동부승지(同副承旨) 이사초(李思招)를 명하여 또한 가서 보살피게 하고, 초상 중에 목욕과 염습(斂襲)과 빈소(殯所)에 관한 제구(諸具)를 다 관(官)에서 마련하였다. 

(후략) 



하긴...
광개토대왕도 형과 여동생이 있고 뒤주 속에서 죽어간 사도세자도 다시 살아났으니 그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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