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모델과 눈 맞추기… ‘시선의 수학’
[동아일보]
광고 사진작가 박창민 씨는 “사진 모델이 렌즈를 바라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시선을 끄는 정도가 다르다”고 말한다. 모델이 도발적으로 렌즈를 바라볼 때 시선을 더 끈다는 것이다. 사실 모델이 렌즈(사진 정면)를 응시하도록 하는 데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묶어 두려는 고도의 전략이 담겨 있다. 고등과학원 수학과 최재경 교수는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시선이 가진 기하학적 특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시선은 직선으로 간주된다. 직선은 말 그대로 두 점을 최단거리로 잇는 선이다. 사람의 시선에서 바로 그 두 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수정체와 망막 중심점(황반)이다. 수정체는 빛이 눈동자에 처음 부딪히는 점이고, 망막은 이 빛이 맺히는 점이다. 일상에서 “눈길이 마주쳤다”거나 “눈이 맞았다”고 하는 경우는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겹쳐 한 직선을 이룰 때다.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도 눈의 구조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렌즈를 통과하는 모든 직선(빛)은 필름에서 각각의 점으로 맺힌다. 그런데 렌즈를 바라보는 모델의 시선은 사진에서 직선이 아니라 한 점으로 겹쳐 나온다. 사진은 2차원 평면이기 때문에 모델의 시선도 수정체와 망막 중심점이 겹쳐 한 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점에서 나오는 모든 직선은 모델이 사진 속에서 보내는 시선이 된다. 점에서 나오는 직선의 수는 무한하기 때문에 모든 방향에서 쳐다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 봐도 사진 속 모델과 마주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눈과 한 점으로 바뀐 사진 속 모델의 시선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사실 ‘눈 맞춤’이 이런 광고 사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술관에 전시된 초상화 인물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봐도 그 시선은 항상 나를 따라오는 것처럼 보인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어느 자리에서나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사진 속 시선의 원리를 그대로 따른다.물론 사진이나 그림 속 인물이 항상 우리를 쳐다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자리를 옮겨 봐도 눈을 맞추기 힘든 경우도 많다. 최 교수는 “이 중 눈을 맞추기 힘든 경우는 인물이 정면(화가의 눈)을 응시하지 않을 때”라고 말한다. 사진에서는 모델이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지 않는 경우다. 이때는 사진이나 그림 속 모델의 망막 중심과 수정체가 겹치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점이 된다. 이런 경우 시선은 점이 아니라 사진 위에 이 두 점을 지나는 직선으로 나타난다. 만일 억지로라도 눈을 맞추고 싶다면 직선의 연장선 위(사진이 놓인 평면 위)에 눈을 갖다 대야 한다. 사진을 앞이 아닌 옆에서 봐야 한다는 것. 사진이나 그림 속 인물과 눈을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광고 사진에 여러 인물이 등장할 때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에게 좀 더 눈길이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 교수는 “이 같은 문제는 3차원 공간에 사는 사람을 2차원인 평면에 투영했기 때문에 일어난다”며 “입체공간이 평면으로 납작해지면서 일어난 하나의 시각적 착란”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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