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암과 고란사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있는지는 나중에 컴퓨터 뒤져서 안 것일 뿐 처음부터 알고 간 것은 낙화암과 고란사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자세히 알고 간 게 아니라 그냥 이름 몇 번 들어보고 대충 이렇다더라.. 라는 정도의 상식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저것 생각안하고 조금 오르다보니 오른쪽으로 계단이 보였다. 대충 반월루 오르는 계단이라고 기억하는데 그리 관심을 둔 곳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어차피 알고있는 곳은 낙화암과 고란사 뿐이니 갈 길은 처음부터 정해진 탓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봤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한참 더운 날씨에 이리저리 돌아볼 용기가 없었던 탓도 더해졌을 것이다.
조금 오르다 보니 이번에는 사자루를 향하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 있었다.
가봐야 누각하나 밖에 더 있겠어...하는 마음으로 갈라지는 길 옆에 있는 간이 판매점에서 얼음 동동 얼린 생수 하나 사들고 그냥 낙화암이라 표시된 이정표를 따라 길을 재촉했다. 나름대로 의지가 곧아서... ㅋㅋ
그렇게 생각해도 됐는데 인터넷 검색하면서 본 후로는 안가본 걸 후회하게 돼버렸으니 괜한 x고집을 피운 꼴이 돼버렸다. 부소산에서는 분명히 사자루라고 봤는데 사비루라고 표기되어 잠시 헷갈렸지만 사자루라고도 하고 사비루라고도 하나보다... 하고 그냥 생각을 접어버렸다.
그래도 돌계단을 만들어서 길을 잇고 있으니 등산하는 기분까지는 아니지만 블록으로 반듯하게 만든 길이 갑자기 울퉁불퉁한 돌계단으로 바뀌니까 잠시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 건 인지상정일 터. 그래도 지금은 내려가는 길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터벅터벅 내려가다보니 백화정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백화정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지만 가는 길에 틈틈히 서있는 이정표를 보고 낙화암 근처에 있으려니 생각을 해서인지 눈 앞에 보이는 순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백화정에 오르니 30대 초중반의 여자 둘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백마강쪽을 향하고 서니 고요하게 흐른다라는 말이 적격인 강물이 발 아래로 펼쳐지고 부여의 들녘이 그 옆을 지키고 있다. 편액이 걸려있어 시선을 향했는데 순간 언짢은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정준호, 오동규, 유한별 그리고 두범이와 4월8일 왔다간 동현이.....
백화정에서 내려와서 바위위를 더듬어 낙화암 위에 섰다. 위험한 절벽 위라 그런지 더 이상 다가서지 못하게 막아놔서 절벽아래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이 위에서 생을 마감한 삼천궁녀의 한은 충분히 짐작할만 했다. 다만 삼천 명씩이나 이곳에서 낙화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아둔한 군주로 전락해버린 의자왕과 그 노리개로 전락해버린 궁녀들의 진심이 억울하게 바뀌었나보다 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곁들여본다.
잠시 한숨을 고르다보니 백마강변을 유람할 수 있는 선착장 옆으로 고란사의 지붕이 시야에 들어왔다. 숲 사이로 보이는 고란사의 지붕을 보고 있노라니 고란사에 대한 기대가 좀 더 커졌다.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되면서. 하지만.....
어쨌든 이제 고란사로 가보자. 어라?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려왔던 길과는 사뭇 다르다. 경사도 훨씬 가파르고 올라오는 분들의 숨소리도 거칠다. 나도 올라올 때 저렇게 되겠군...고란사에 대한 기대도 기대지만 올라올 때의 걱정도 함께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와서 어쩌겠는가. 길 옆으로 돌무더기가 있어 주변에 있던 돌하나 올려놓고 터버터벅 내려가본다. 그러고보니 돌 올려놓으면서 소원을 안빌었다. 하다못해 올라올 때 편하게 올라오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이라도 빌었으면 좀 편해졌을지도 모르는데....
고란사 가는 길 내내 ♬ 백마~가앙아~~ 고오요하안~ 다~알 바암에~~~ ♩♪ 노래가 흘러나온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역시 모든 것은 백제의 멸망과 낙화암의 궁녀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왕자들을 위한 고란정은 보지도 못했는데... 하긴 뭐 사라지고 없는 정자를 내가 무슨 수로 볼 수 있겠는가. 다만 왕자들이 거기까지 걸어가진 않았을테고 말타고 가기도 좀 그랬을테고 가마에 메고 간 가마꾼들이 괜히 불쌍해진다.
드디어 고란사다. 이게 고란사의 전부냐고 물어보실 분도 계실테고 지금까지 고생하며 내려온 과정상 이게 전부면 나는 억울해서 어떡하냐고 더 있다고 대답을 해야 되지만 아쉽게도 이게 전부다. 딸랑~~~ 대웅전이라는 글씨대신 고란사라고 적혀있다.
물론 옆에 종도 하나 메달려있고 뒷쪽으로 약수도 있긴 하지만 본전 하나랑 기념품 파는 가게 하나 밖에 없다. 그래도 대웅전이라도 하나 있으니까 절은 절이지... 하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래면서 대웅전으로 향했는데...
아뿔싸... 고란사는 대웅전이라는 그 흔한 석자도 안보인다. 무슨 암자도 아니고... 그래도 사찰을 가봤다면 제법 가본 편인데 대웅전이라는 글씨 석자가 없는 사찰이 있다니... 그냥 고란사(皐蘭寺)다.
아무리 대웅전으로 읽고 싶어도 그냥 고란사다. 나름대로 한문을 알만큼 아는 처지니 내가 잘못 읽은 것도 아니고....하긴 고란사면 어떻고 대웅전이면 어쩌랴. 이게 고란사인 것을.
잠시 머뭇거리고 있노라니 기념품 파는 아주머니가 약숫물을 먹어봤느냐고 묻길래 못먹었다 했더니 뒷쪽으로 돌아가면 약수터가 있으니 한 번 먹어보라 그런다. 뭐... 그정도는 먹어줘야 고란사에 온 최소한의 예의는 되지 싶어서 뒷쪽으로 향했다.
고란사의 뒷 쪽은 바로 절벽이다. 하긴 낙화암 아래에 지은 사찰이니 절벽이지 평지일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참 험한 곳에 용케도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절벽아래 약수터가 있었다. 조그맣게 지붕도 올려놓고 울긋 불긋한 플라스틱 그릇도 몇 개 걸어놓고....
몇몇 분들이 약숫물을 마시면서 연신 맛~ 좋다. 시원하다 하면서 즐거워 하신다.
그 틈에 끼어서 한모금 마시니 나 역시 카 ─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물맛은 그게 그거다. 다만 힘들게 내려와서 먹은 물이라 그랬을 것이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일테고.... 이런 말을 한다고 굳이 고란사의 약숫물을 깍아내린다고는 생각하지 말자.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마침 보살님(불교용어로 여자신도를 이렇게 부르는 것 같다. 기독교에서 자매님 하고 부르듯이...) 한 분이 오시길래 고란초는 없냐고 물었다. 보살님 말씀이 고란초는 있는데 장소는 비밀이란다. 가져가봐야 금방 죽어버리는데도 눈에 보이기만 하면 뽑아가버려서 군락지는 보호차원에서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순간 좀 뜨끔했다. 많이 있으면 하나 뽑아갈까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을건데 굳이 뽑아가려는 욕심이 있으니 사람이겠지만 나를 비롯해서 몰지각한 사람들이 참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였는지 고란사까지 고란초를 못보면 아쉬워할 분들을 위해서 약수터 옆에 고란초를 심워서 볼 수 있게 해준 스님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수행하는 곳에 와서 방해만 하고 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 먹을때마다 삼년이 젊어져서 할아버지가 너무 많이 마셔서 갓난아이로 변해버리고 백제의 왕이 고란사의 약수를 즐겨서 왕에게 바치는 고란사의 약수에 고란초를 띄어 고란사의 약수라는 증명을 했다는 전설을 뒤로 한채 올라가는 길을 걱정하며 고란사를 나섰다.
예전에 포스팅한건데 어디로 갔나 없어서 다시 올렸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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