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전 당시 일본에서는 대륙으로 전쟁을 하러 간 일본군의 승전보가 일본의 자긍심이 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이 무렵 일본신문은 전쟁에 관한 기사로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목 베기 시합에 관한 것으로,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살인을 부추겼다.
이러한 목 베기 경쟁중 하나를 남경의 자금산 기슭에서 찾아볼 수 있고, 이에 대한 기록 또한 주요신문에 실려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쿠융에 주둔하던 카타기리 부대의 두 장교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노다 다케시(野田毅)소위는 무석(無錫,우시)을 출발한 이후, 100인 목 베기 경쟁을 시작했다.
이 두 하급장교는 그들에게 용장(勇將)이라는 호칭을 받음으로써 가장 강한 사무라이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을 나타낸 데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상관은 격려했고 살인시합을 허가해 줬다. 누가 먼저 남경을 점령하기 전에 100명을 죽이고 영광을 차지할 것인가라는 것이 경쟁의 목표였다.
그들이 쥐룽(句容)입성 직전까지, 무카이도시아키는 89명을, 노다다케시는 78명을 죽였다. 그들의 목표인 100명은 실패했지만 경쟁은 멈추지 않았다. 비록 두 장교 모두 목표를 채우진 못했지만 그들의 상관은 그들의 노고를 저버리지 않았다. 상관은 여러 차례 격려하고 포상했고 그들의 분투를 뒷받침했다. 오사카의 마이니치 신문(大阪毎日新聞) 과 도쿄의 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과 일본광고지(영문판)는 이 살인경쟁을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기사화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100인 목 베기 경쟁을 벌인 두 소위의 실물크기 사진판
무카이도시아키와 노다다케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명예가 수그러드는 것을 원치 않았고, 남경함락 후 자금산 기슭에서 두 명의 장교는 경쟁을 계속 이어 갔다. 이미 무카이 도시아키는 106명을 노다 다케시는 105명을 죽였지만 누가 먼저 100명을 기록했는지 알지 못했다.
무카이 토시아키 소위 1948년 처형 당시 36세 / 노다 타케시 소위 1948년 처형 당시 35세
둘 다 목표는 넘어섰지만 누가 먼저 달성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경쟁을 '친선게임'으로 생각했고, 무카이도시아키는 '재미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시점에서 승자를 가리지 못하자 두 장교는 150명으로 목표를 바꾸거나 1000명을 목표로 하는 큰 계획을 생각했다. 계획을 수정한 후 두장교는 경쟁에서의 즐거움을 계속해 느꼈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무카이도시아키는 250명을 죽여 노다다케시를 크게 앞질렀다. 그래서 노다다케시는 1000명을 목표로 하는 경쟁을 무카이에게 제안했다." (자료 :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1938년 2월 9일자)고 한다.
중국에서는 1946년 도쿄 전범재판에 검찰과 법관을 파견했는데 그때 이 기사가 발견돼, 증거로 채택되었으며, 두 사람은 1948년 남경 양화대에서 중국 측에 의해 총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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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니치니치 신문(東京日日新聞)
1937년 11월 30일자(제1보) (표제) 100인 목 베기 경쟁! 두 소위, 벌써 80명. (제 1보)
제일선에 서 있는 카타기리(片桐) 부대에 '100인 목 베기 경쟁'을 기획한 청년장교 두 명이 있는데, 무석(無錫,우시) 출발 후 이미 한 명은 56명을 베었고, 한 명은 25명을 베었다고 한다.
한 명은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소위(26)이고 = 야마구치현(山口縣) 구가군(玖珂郡) 가쿠미무라(神代村)출신= , 또 한 사람은 같은 부대 노다 다케시(野田毅) 소위(25) = 가고시마현(鹿児島県) 기모츠키군(肝属郡) 다시로무라(田代村) 출신=총검도(銃劍道) 3단인 무카이 소위가 허리에 찬 칼 '관의 손육(關의 孫六)'을 어루만지자, 노다 소위는 이름없는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보도(寶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석 출발 후 무카이 소위는 철도노선 26, 7km를 대이동 하면서 전진했고, 노다 소위는 철도 선로를 따라 전진하게 되었는데, 일단 두 사람은 헤어졌고, 출발하는 이튿날 아침, 노다 소위는 무속에서 거의 8km 떨어진 무명의 마을에서 적의 방어진지(토치카)에 돌진하여 적 4명을 베고 선진 (先陣, 선봉을 서는 부대)을 자청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무카이 소위는 크게 고무되어 그날 밤 횡림진(橫林鎭)의 적진에 부하와 함께 뛰어들어 55명을 베었다. .....
1937년 12월 4일자(제2보) (표제) 급속으로 약진/ 100인 목 베기 경쟁의 경과
난징까지 '100인 목 베기 경쟁'을 개시한 00부대의 급선봉 카타기리 부대, 토야마 부대의 두 명의 청년 장교, 무카이 토시아키, 노다 다케시 양소위는 상주(常州, 창저우 )출발 이래 분전에 분전을 거듭해, 2일 오후 6시에 단양(丹陽)에 들어가기까지, 무카이 소위는 86명을 베었고, 노다 소위는 65명을 베는, 호각지세의 대접전을 벌이고 있다. ......
무카이 소위는 단양 중정문(中正門)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일을 결행했고, 노다 소위는 오른쪽 손목의 경상에도, 100인 목 베기 경쟁에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기자들이 단양에 입성한 후, 숨돌릴 틈도 없이 출발하는 토야마 부대를 따라갈 때, 무카이 소위는 행진하는 대열 속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기를,
"노다 녀석이 거의 쫓아 와 붙었으니 멍하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노다의 상처는 깊지 않아 걱정할 필요 없어요. 능구진(陵口鎭)에서 사람의 뼈를 베어서 내 '관손육(關孫六)' 칼날 한 곳이 손상되었지만, 아직 100명이나 200명은 벨 수 있어요....
1937년 12월 6 일자 조간( 제3보)
(표제) 89대 78/ 100인 목 베기 경쟁 대접전/ 용장! 무카이, 노다 두 소위
난징을 목표로 하는 '100인 목베기 경쟁'을 하는 두 청년 장교, 카타기리 부대 무카이, 노다 양소위는 쥐룽(句容)입성에서도 최전선에 서서 분전, 입성 직전까지의 전적은 무카이 소위는 89명, 노다 소위는 78명으로 접전.
12월 13일자 조간(제4보)
(표제) 100인 목 베기 "기록초과" 무카이 106-105 노다/ 두 소위 또 연장전
난징에 도착하기까지 "100인 목 베기 경쟁"의 진기한 경쟁을 시작한 전례의 카타기리 부대의 용사 무카이 토시아키, 노다 다케시(마마) 두 소위는 10일의 자금산(紫金山, 쯔진산) 공략전의 혼잡 중에 106대 105의 기록을 세웠다, 10일 정오, 두 소위는 예상한대로 칼날이 손상된 일본도를 한 손에 들고 대면했다
노다 " 나는 105명을 베었는데, 당신은?"
무카이 "나는 106명이다!"……
두 소위는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언제 누가 먼저 100명을 베었는지는 불문에 붙였고, 종국에는 "나와의 게임은 무승부다. 하지만 다시 150명으로 하는 것이 어때?" 라고 금세 의견이 일치해, 11일부터 드디어 150명 목베기 시합이 시작되었다.
11일 오후 중국 남경에 있는 손문의 능묘가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자금산에서 패잔병사냥에 한참인 무카이 소위가 '100인 목 베기 게임, 무승부'의 전말을 이야기한 후,
"모르는 사이 양쪽 모두가 백 명이 넘어 있어, 재미 있었다. 나의 관손육(關孫六) 칼날이 손상된 것은 중국인 한 명을 벨 때, 중국의 대나무로 만들어져 비교적 쉽게 칼날이 상할 수 있는 철모를 함께 베었기 때문이다. 싸움이 끝나면 이 일본도는 귀사에 기증한다고 약속했다......"
.....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大阪毎日新聞)
도쿄 니치니치 신문과 오사카 마이니치, 두 신문기사를 작성한 사람은 모두 아사미(浅海)기자<제 4보는 예외로 스즈키 지로우(鈴木二郎)와 공동 발신>이고 두 신문기사의 표제만 달리했으므로, 제 1보만 실었습니다.
1937년 12월 1일 석간 (제 1보)
(표제) 난징을 향한 상쾌한 목 베기 경쟁
관의 손육(關의 孫六)은 56명을 베었고, 전래의 보도는 25명을 쓰러뜨리다. 카타기리 부대의 두 소위
100인 목 베기를 계획한 청년장교 두 명이 있다. 이 경쟁은 무석(無錫,우시) 에서 출발할 때 시작되었는데, 한 사람은 이미 56명을 자르고, 또 한 사람은 25명을 잘랐다고 한다.
한 사람은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소위(26)이고, 또 한 사람은 같은 부대 노다 다케시(野田毅) 소위(25) 였다. 이 두 사람은 무석입성과 시작된 주력전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난징도착까지 100인 목 베기 경쟁을 하자라고 얘기했다.
.......
두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신문기사로 나가면 신부후보들이 많이 오겠네요"라고 했더니 80여 명을 벤 두 용자들이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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