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춘화도 - 단원(檀園) 김홍도
조선시대 춘화도로 단원 김홍도의 작품들입니다.
조선시대 춘화의 성격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강하다는 점입니다. 우수한 조선시대 춘화의 어디에도 변태적이거나 부조화적인 성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는 성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생명의 원천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됩니다.
모든 춘화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단원 김홍도의 도장이 있는 춘화첩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자연경물에 음양적 성격을 부여해 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상적 특징은 한국 춘화에서만 발견되는 유일한 예이며, 그것은 바로 도교적 자연관과 우주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조선 춘화에서는 변태성욕적인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현재 발견된 춘화들 중 질적으로 가장 우수한 춘화는 단원 김홍도의 것으로 전하는 ‘운우도첩(雲雨圖帖)’ 입니다. 필치는 격조가 있고, 전체의 구성이 어색함이 없으며, 인물묘사는 자연스럽습니다.
등장인물의 성격이 분명하고, 자세가 명료하며, 나무와 계곡, 토파(土坡)의 처리 등이 밀도 있게 처리되어 있어 뛰어난 화가의 감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반면 혜원의 낙관이 찍혀 있는 ‘견곤일회도첩(乾坤一會圖帖)’은 단원의 화첩에 비해 회화적 밀도가 부족하고, 도상도 성행위 위주로 변질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운우도첩’과 마찬가지로 인물의 성격묘사나 주변 경물묘사가 풍속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운우도첩’이 띄고 있는 자연관이나 음양사상은 현저하게 삭감되어 있습니다. 외설적인 면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천박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조선시대의 춘화는 유희만을 목적으로 하는 포르노물과는 거리가 멉니다.
남녀의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배경을 이루는 바깥 풍경이나 실내 장식품을 적절하게 배치, 단순한 성유희를 넘어선 한 차원 높은 예술성을 지닌 성풍속도로 그려진 것입니다.
이를 테면 남녀가 바깥에서 은밀하게 정사를 벌리는 단원의 작품인 ‘애무정사(愛撫情事)’를 보면 그림의 초점이 두 남녀에게만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미동정사(美童情事)
동양철학이 담긴 춘화입니다. 남녀의 에로티시즘을 자연경물(景物)과 절묘하게 조화시켜 성적결합을 음양의 원리로 풀어냅니다. 나뭇가지가 잎을 틔운 화창한 봄날, 궁궐의 어느 정원으로 보이는 은밀한 곳에서 젊은 남녀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남자는 수려한 용모의 청년이고, 여인은 기녀로 보입니다.
무성한 숲, 뒤틀리고 꼬이고 교차하면서 뻗어 올라간 나무, 그 사이로 지나가는 근육질 같은 토파(土坡)와 젊은 남녀의 정열을 한 무더기의 경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낸 야릇한 표정입니다. 성적행위를 보여주지 않고 짜릿한 맛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타구 옆으로 나온 여인의 손, 보이지 않는 남자의 손이 ‘미동치기’를 연상케 합니다.
음양체위(陰陽體位)
여인이 위에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이는 남녀의 성적결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배경이 산이나 계곡 등 자연형태를 마치 음양이 결합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여 화면 분위기를 자극적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 바위는 여성의 성기를 암시 합니다. 그 바위와 연결된 불끈한 평지는 마치 바위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거대한 남근(男根)을 표현한 것입니다. 섹스를 하는 자연의 계곡이나 형상물은 단순한 무대장치로 그려진 것이 아닙니다. 음양결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설정한 장면 입니다.
이처럼 야외의 승경(勝景)을 춘화의 배경으로 묘사한 예는 중국이나 일본 춘화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남근이나 여근곡(女根谷)처럼 음양을 상징적으로 내세운 야외정사를 즐겨 다루는 묘법은 조선 후기 춘화의 전형적인 양식입니다.
월하연인(月下戀人)
달 밝은 밤에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방사(房事)가 아닌 야외정사를 치르고 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 그림은 춘화라기보다 한 폭의 산수화 같습니다. 실제 손으로 벌거벗은 두 남녀를 가리고 보면 아름다운 한여름 밤의 풍경일 수 밖에 전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 춘화는 인간의 성을 자연과 결합시킴으로써 외설적인 주제를 예술로 승화 시켰습니다. 상체나 둔부에 비해 다리가 유난히 가녀린 인체의 묘사는 비록 정확한 데생을 바탕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행위에 대한 사실감만은 잘 살려냈습니다. 전체적으로 담채와 수묵이 어우러져 담담한 느낌을 줍니다. 당장 한 편의 시가 읊어질 듯한 서정적인 자연경관을 성애장면과 결합시킨 작품입니다.
밝은 밤에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죽어도 좋아
초가마루에서 옛 기억을 살려 시도하려는 노인부부의 모습에선 조선적인 멋과 회화성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노부부의 성풍속도 입니다. 노부인이 치마를 걷어 올린 채 남편의 성욕을 부추기고 있지만, 도무지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늙은 부부의 노쇠한 성의 안타까움을 잘 표현한 명작입니다.
“나도 한 때가 있었는데….”
마음은 있어도 몸이 말을 들어 주지 않음을 아쉬워하는 장면입니다.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성의 노스탤지어가 아닐까…
요즈음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화제를 뿌리고 있어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일깨우는 그림입니다. 실버세대가 늘어나고 평균수명도 70세를 넘어 섰습니다. 단원의 작품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제 나이 든 부부도 건강한 성생활을 생각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화급지사(火急之事)
중년의 사내가 후다닥 옷을 벗어 던지고 누워 있는 여인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렸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할까… 덤벼들 듯 달려가는 벌거벗은 양반의 황급한 모습이 한바탕 겨뤄 볼 자세입니다. 그와 반대로 장죽을 물고 홑치마를 걷어 올린 채 누워 있는 기녀의 자태는 좀 느긋합니다. 하지만 급하기는 양반이나 기녀나 매한가지 아닐까…
이 춘화는 조선시대 기방풍경의 일면을 잘 보여 줍니다.
벗어 놓은 의복과 ‘양태’와 ‘갓도래’가 넓은 갓으로 보아 남자는 양반계급이며, 긴 담뱃대를 문 채 사내를 받아 들이는 여인은 기녀입니다. 사내는 방문도 닫지 않은 채 급히 서두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다급한 상황을 묘사했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아마도 이 기생을 독차지한 남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급히 일을 치러야 하는 정황을 암시한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춘화는 성유희 장면을 담고 묘사 하면서도 그 장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당대 사회에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 이를테면 한량과 기생의 관계 같은 것을 묘사한 일반 풍속화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초롱을 들고 기생집을 찾아온 한량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장죽을 물고 누워 있는 기녀에게로 달려 갑니다. 성급히 달려 가는 한량의 몸짓도 우습지만 한량의 급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반라로 누워 있는 기녀의 표정 또한 재미있습니다.
속고쟁이가 없이 겉치마만 걷어 올려 당장이라도 일을 치를 수 있게 준비를 완료한 기녀의 속셈은 어떤 걸까… 님 오시기만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한량이 들어서자마자 담배를 피우며 자세를 잡은 게 아닐까……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갓과 옷, 그 옆에 놓여 있는 불 밝힌 초롱으로 급한 정황을 읽을 수 있지만, 왜 기녀는 담뱃대를 물고 있을까……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 됩니다.
등불을 들고 오면서 기녀와의 이런저런 정사를 생각했을 한량의 다급함은 얼른 이해가 되지만 좀처럼 기녀의 담뱃대에 대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습니다. 기녀도 담배를 피우면서 님 오시기를 학수고대 했다는 해설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님과 뜨거운 사랑을 오래오래 간직하기 위해 담배로 지연작전을 구사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춘화에는 곧잘 장죽을 문 여성이 등장합니다.
‘한국의 춘화’는 유희만을 목적으로 하는 포르노물과는 거리가 멉니다. 남녀의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배경을 이루는 바깥 풍경이나 실내 장식품을 적절하게 배치, 단순한 성유희를 넘어선 한 차원 높은, 예술성을 지닌 성풍속도로 그려진 것입니다.
이를 테면 남녀가 바깥에서 은밀하게 정사를 벌이는 단원의 작품인 ‘애무정사(愛撫情事)’를 보면 그림의 초점이 두 남녀에게만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물기가 흥건한 먹으로 묘사된 계곡 입구에는 진분홍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바위와 흙더미(土坡)가 결합하는 장면은 자연에서의 음양(陰陽)이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산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성의 그것을 닮은 여근곡(女根谷)을 은유적으로 표현, 자연과 인간의 음양결합을 한 화면에 담아 남녀의 성애를 자연스럽게 부각시킨 것입니다.
담뱃대를 문 여인, 여인의 등에 얼굴을 묻고 있는 초립동의 살포시 보이는 볼기짝에서 외설은 커녕 순수한 사랑의 몸짓을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춘화는 배경을 이루는 자연 경관뿐 아니라, 행위가 벌어지는 주변의 경물도 의미 없이 등장하는 법은 없습니다. 절구와 절굿공이가 있는가 하면, 참새나 개의 교미 장면을 살짝 곁들임으로써 강하게 암시하는 수법도 흔히 사용됩니다.
‘스님의 밀교’에서 동자승처럼 하녀나 시동이 남녀의 정사를 엿보는 장면을 심심찮게 등장시켜 그림 보는 재미를 돋워줍니다. 남녀가 성교하는 노골적인 표현이 있다 해도 주변 경관이나 화분, 책상, 장독대, 화로, 등잔, 괴석 등 배경 그림들이 직설적인 표현을 누그러뜨리고 전반적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춘화가 외설 차원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운우도첩(雲雨圖帖) 07
한 폭의 산수화, 또는 산수와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풍류를 묘사한 풍속도와 같은 춘화 (역시 김홍도!) 배경의 바위는 둔부의 모양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주인과 여종과의 성희 장면
여종은 모든걸 체념한 듯 사뭇 마음대로 하라는 식의 표정이 우스깡스럽기도 합니다.
휘장(徽章)이 쳐진 방안을 배경으로 남녀가 정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마루에 놓여 있는 매화나무 분재와 수선화, 그리고 문방구와 책 등으로 보아 이 곳은 사대부가의 사랑방으로 조선 후기 양반집의 실내정경과 분재를 재배하는 새로운 취미가 유행했다는 기록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입니다.
지붕 선과 문틀의 묘사 등 사선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화면에 동적인 분위기와 심도를 주고 있습니다. 춘화는 흔히 포르노그라피로 치부됩니다. 그러나 인물화나 풍경화와 마찬가지로 옛사람들의 문화나 질병까지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얼굴에 담긴 반점이나 낯빛으로 춘화의 모델들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 추측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춘화를 단순히 포르노물이라고 단정하는 것보다는 옛 조상들의 성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역사자료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운우도첩(雲雨圖帖) 10
18세기 조선왕조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보여주는 이 운우도첩의 그림들은 매우 사실적이며 속되지 않아 후대 춘화들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말기나 20세기의 춘화들에도 혼교하는 장면이 간혹 있지만 그리 흔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춘화첩 중에서 단원의 작품으로 전하는 이 운우도첩은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화첩을 그린 화가의 창의력과 필력은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월등히 뛰어납니다. 조선왕조 시대의 여러 가지 성풍속을 보여 주는 이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며 진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속되지 않습니다.
또한 이 그림은 특이하게 두 명의 여자와 한 남자가 혼교하는 장면을 다룬 파격적인 장면입니다.
우리 춘화의 적나라한 장면들은 단순히 도색적인 성희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인간사의 하나로 표현한 것이어서 주목됩니다. 그리고 낭만이 흐르고 가식 없는 표현들로 감칠맛 나는 것이 사랑스러운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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