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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깊은 바다속에 잠겨있는 고대 유적

zzixxa 2009.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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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46억 년 전에 생겨났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인간 이전의 영장류는 신생대 4기의 빙하기에 비로소 출현했는데 그 때가 대략 180만 년 전 일이다.

몇몇 과학자들은 화석을 연구하여 인류의 사회활동과 문화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야 나타났는데 그때가 약 1만 2천년 전이라고 본다.

그러나 처음 7천년 동안, 즉 석기시대에는 이들의 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한다.

문자와 상징체계의 기록이 5천년 전에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이 시대 이전 즉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 시대를 사람들은 선사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해저에서 건져 올린 점점 더 많은 선사시대 유적들이 위와 같은 견해에 도전하고 있어서 과학자들은 당황하고 있다.

▲ 이집트 고대문자 해저 유적 중 건축물들은 정교한 건축 기술과 예술적 기교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발달된 문명의 흔적을 보여준다.게다가 그 문명의 주인공들은 문자를 알고 있었으며 피라미드를 건설하기도 했다.

현대의 과학기술로 보면 그곳이 1만년 혹은 그 이전에는 육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석기시대 훨씬 이전의 선사시대에 발달된 문명이 존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문명들은 사라졌고 바다 속에는 그 유적만 남았다.

아래에서 이들 문명이 존재했다는 몇 가지 증거들을 살펴보자.

ː지중해 연안에서 발견한 해저도시

이집트 해안 근처 해저에서 고고학자들이 거의 완전히 폐허로 변한 고대도시의 유적들을 찾아냈다. 2,000년 6월에 프랑스와 이집트 연합팀은 1,000여 년 전에 가라앉은 메누티프와 헤라클레이온이라는 도시를 알렉산드리아에서 6km정도 떨어진 지중해 해저에서 발견했다.

가발라 이집트유물최고회의 의장인 가발라 알리 씨는 "무덤이나 교회 또는 이슬람 사원을 발굴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지만 이번에 우리가 발굴한 것은 옛날 그리스-로마시대 문헌에서나 들었던 완전한 도시들이었기에 우리는 대단히 흥분하였다."라고 말했다.

파리에 본부를 둔 유럽 해양고고학연구소 소장인 프랭크 고디오 씨는 "아마 그것들은 지진 때문에 사라졌던 것 같다. 지진으로 지중해의 해수면의 갑자기 상승했다가 가라앉았거나 아니면 기후의 변화가 그 도시들의 멸망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 도시에는 세라피스, 이시스, 오시리스 신들에게 바쳤던 수많은 사원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와 예술이라는 면에서도 고대의 전설이었다. 해저에서 건져 올린 정교하게 조각된 키 1.5m의 검은 이시스 여신상을 매스컴에 공개하면서 고디오씨는 "나에게는 그녀가 17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마 1,200 살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2년에 걸친 해저탐사에서 파라오(고대 이집트 왕) 동상의 머리, 수염을 기른 세라피스 신상, 스핑크스 상, 전체 길이가 90m나 되는 고대 로마풍의 기둥, 화강암 석상, 비잔틴 제국 시대나 이슬람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금화와 그 밖에 가옥이나 사원, 이시스 여신을 모신 신전의 흔적도 발견하였다.

고고학자들은 이 도시들이 가라앉기 수백 년 전부터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발굴한 금화로 볼 때 이 지역들은 적어도 8세기까지는 물속에 가라앉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지역에서 카노푸스와 토니스라는 수몰된 다른 두 도시를 확인하였다.

이렇게 해저로 가라앉은 고대도시들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하였다. 이집트의 이 도시들은 약 1,200년 전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보다 훨씬 오래된 해저도시들도 발견하였다.

ː버뮤다 삼각지대의 수중피라미드와 바하마제도의 해저 건축물

1958년에 몇몇 미국의 과학자들이 바하마제도 주위의 바다 속을 탐사하던 중 이상한 건축물들을 발견했다. 이 건축물들은 특이한 기하학적 양식이었는데 수 마일이나 곧바로 뻗어 있었다. 10년 후에 길이가 120m에서 150m에 이르는 거대한 돌 벽들을 그 근처에서 발견하였다.

이 벽들은 주요 벽과 함께 직각을 이루었으며 주요 벽은 한 면이 1평방피트 이상인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이후에 복잡한 연단, 도로, 항구, 다리 등과 같은 것들을 발견하였다. 이 전체 유적들이 마치 항구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유럽과학자들은 버뮤다 삼각지대를 조사하던 중 예전에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수중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그 피라미드는 한 변이 300m, 높이는 200m였다. 피라미드에는 사람이 만든 것이 분명한 거대한 구멍이 두 개 있었다.

바닷물이 이 구멍으로 밀려 들어와서 회오리치며 밀려나와 피라미드 근처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그 소용돌이가 해수면을 구름모양으로 만들었다. 육지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은 수 만년 이전 일이기 때문에 이 피라미드를 언제 만들었는지 추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ː일본 요나구니 섬 해저에서 발견한 상형문자

약 50년 전에 몇몇 잠수부들이 류큐 군도에 있는 요나구니 섬 남단의 바다 속에서 인간이 만든 건축물 유적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산호로 뒤덮인 사각형 모양 건축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거대한 연단이었다. 모퉁이, 통로, 계단, 아치형 부속 건축물을 갖춘 연단이었다. 그 유물은 고대도시의 제단과 비슷하게 생겼다. 길이는 동서로 약 200m, 남북으로 약 140m에 이르렀다.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약 26m 정도였다.

1986년에 그 지역 잠수부들은 이 해저 도시를 “해저유적 잠수지역”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곳은 여러 언론 매체들이 보도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그 유적을 발견한 직후에 류큐 대학에서는 “해저고고학탐사대”를 결성하여 8년간에 걸친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 결과 시후나 섬 남쪽과 인근 지역 바다 속에서 더 많은 유물을 발견하였다.

그 유물들로는 돌로 만든 건축물, 기둥에 둘러싸인 동굴 같은 건축물, 사람의 머리상, 아치형 문, 기하학적 도형의 거북이 상 등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발견은 “상형문자”였다. 그 상형문자들은 돌 벽에 새겼는데 고도로 발달한 어느 고대인류문명이 후세에 남긴 것으로 보인다.

위 유적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를 살펴보면 거리와 농경지가 있다. 가장 큰 유적은 길이가 100m에 이르고 높이는 25m나 되는 거대한 바위 구조물이다. 류큐 대학에서 컴퓨터로 합성한 모형에 의하면 그곳은 아마 고대인들이 모여 종교의식을 거행한 사원의 제단인 것 같다고 한다. 그 사원 북쪽에는 반원형 지주가 있는 두 동굴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그곳이 의식을 거행하기 전에 목욕을 한 장소라고 보고 있다. 그 사원 동쪽에는 거대한 바위 두 개가 겹쳐있는 아치형 문이 있다. 그 바위 상단에는 사람이 만든 직사각형 구멍이 있다. 그 바위는 기계로 깎았으리라고 추정할 정도로 정교했으며 그 도시의 주춧돌로 사용했던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요나구니 섬 남쪽의 유명한 리센얀 주위의 바다 속에서 사람의 머리상을 발견하였는데 안면 특징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 후에 그 거대한 인간의 머리상 근처에서 상형문자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그 해저 유적을 건설한 사람들이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마사키 기무라 씨는 류큐 대학 지질학 교수이다. 그는 1999년 9월 어느 인터뷰에서 “그 유적들이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통로와 직각계단이 있고 이 직각계단에는 돌기둥을 세우기 위하여 디자인한 듯 둥근 구멍이 있는 바위가 있다. 인간의 머리상과 상형문자를 발견하였다는 것은 요나구니 섬 남쪽의 해저 유적이 바다 속으로 침몰되기 전에는 지상에 존재했던 선사문명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하겠다.

ː일본에서도 발견한 해저 피라미드(1만 년 전)

요나구니 섬 남쪽은 물론 서쪽에서도 중요한 유적을 발견하였다. 1990년에 잠수부들이 바위로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이 피라미드는 폭이 183m, 높이가 27.43m였는데 직사각형 바위로 만들었고 5층으로 되어 있었다. 근처에는 이 거대한 피라미드와 비슷한 작은 건축물들도 몇 개 있었는데 소형 피라미드라고 할 만했다. 그런 소형 피라미드들은 폭이 대략 10m, 높이는 약 2m인 돌 층으로 되어 있었다.

이 탐사에 참여한 류큐 대학의 지질학자들은 이 유적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인조 건축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자연적으로 생겼다면 부식으로 인한 돌 더미가 있어야 하는데 주위에서는 돌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피라미드를 에워싸고 있는 거리라고 추측할 만한 흔적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미국 보스톤 대학교의 지질학자 잠수팀은 1m 높이 바위 층으로 된 거대한 계단들이 계단식 피라미드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 구조물이 수중부식으로 깨진 바위들로 형성되었다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그렇게 예리한 계단은 이제까지 발견한 적이 없다. 런던대학교의 고고학자들은 그 피라미드를 만든 사람들은 적어도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인더스 문명과 같은 고대문명 수준이라고 믿었다.

도쿄 대학의 한 지질학 교수는 그 지역이 약 1만 년 전 즉 마지막 빙하시대에 바다 속으로 침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과학지식으로 이해한다면, 그 시기 인류는 아직 동물을 사냥하며 생활하던 원시인이었다. 그런 원시인들이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물들을 축조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알려지지 않은 어떤 문화의 유산이라고 본다. 혹자는 그런 진보된, 번창한 문명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해저 유물들이 일본에만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

ː대만 펑후에 있는 고대 해저도시 벽

펑후 현의 고대 사료보관소 기록을 보면 “후징 지역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바다 속에 길게 뻗어있는 도시의 벽을 볼 수 있다.”라고 나와 있다. 예전에 사람들은 그곳을 “후징의 깊은 물웅덩이”라고 불렀다. 1982년에 전문 잠수부들이 후징의 침몰된 도시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이 고대의 도시 벽은 십자 모양이었다. 나침반으로 측정한 결과 그 벽은 정확하게 동서남북 방향을 향하여 직각을 이루었다. 그 벽은 주로 현무암으로 만들어졌고 표면은 해초로 덮여 있었다. 길이는 동서 약 160m, 남북 약 180m에 이르렀다. 두께는 상단부가 약 1.5m, 바닥이 약 2.5m이다. 어떤 부위는 부식하여 평평하지 못했으나 돌 사이의 연결 부분은 대단히 견고했다. 북쪽에 둥근 판 모양 건축물이 있었다. 바깥쪽 벽의 직경은 약 20m이고 안쪽 벽은 약 15m였다.

그 당시에 몇몇 사람들은 그 가라앉은 도시는 후징 지역이 바다 속으로 뻗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질학자들이 연구한 바로는 만약 그 벽이 천연 바위로 형성된 것이라면 깨지지 않은 하나의 바위로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사람이 만든 벽이라면 분리된 부분들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벽이 길고 일직선이라면 사람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하였다.

특히 돌들이 거의 같은 크기이고 직각을 이루었으며 연결한 돌들 사이에는 틈을 메운 흔적들이 보였다. 또한 벽 상단의 우묵한 부분은 십자 모양이었고 평평하고 매끄러운 연결부가 있었다. 이런 것들은 오늘날의 건축표준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영국인 작가 그레이엄 헨콕은 “신들의 지문” 등과 같은 저서를 통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8월 그는 이 지역을 탐사하는 중국과 일본의 조사대에 아내와 함께 합류했다. 그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도시에서 건져 올린 돌 건축물들은 천연 석조물들과는 확실히 달라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 건축물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런 구조물들이 세부적인 곳까지 엄청난 주의를 기울여 만든 것으로 보아 그것들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분명하게도 후징의 해저도시에 있는 돌 벽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이 돌들은 표면이 매우 평평하고 매끄러웠다. 그 돌들을 매우 밀접하게 일직선으로 연결해 놓아서 연결부위는 아주 얇은 나이프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헨콕의 견해로는 이 해저 돌 벽은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말하기를 “현재 인간사회에는 이미 확립된 학설이 있다. 그러나 이 학설로는 최근에 발견한 고고학적 유물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늘날과 선사시대의 건축물들이 서로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까? 사실 현재의 역사는 사라진 고대문명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건축물들이야말로 사라진 고대문명을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단서들이다. 다시 말하면 후징의 해저도시나 유사한 유물들이 과거 인간문명에 대한 숨은 증거를 담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ː전설적인 무 대륙의 문명

19세기 말에 영국의 제임스 처치워드 대령이 인도에서 수비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어느 힌두교 사원의 수도원장에게서 나칼비문(주: 인도의 무 대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토판 비문)을 입수하였다.

그 비문은 매우 난해한 언어로 되어 있었다. 많은 노력 끝에 처치워드와 한 유명한 수도승이 전설로만 존재하던 위대한 무 문명의 역사를 밝혀내었다. 1926년에 처치워드는 무 문명에 대해 기술한 <잃어버린 대륙(The Lost Continent)>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 비문을 보면 무 대륙은 태평양에 위치해 있었다. 무 문명은 매우 번성하여 높은 수준의 문학, 예술, 공예기술, 기계류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놀라운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거대한 건물, 피라미드, 석조 기념비, 성, 도로 등을 건설할 수 있었다. 무 대륙의 수도와 다른 큰 도시에서 단정하고 깨끗한 돌로 만든 도로를 발견하였다. 모든 벽은 금으로 장식하였다. 사람들은 호화스럽게 생활했다.

무 대륙에 살던 사람들은 항해술이 아주 뛰어났다. 그들은 모든 대양을 항해했다고 했다. 그들은 강력한 식민지 제국을 건설하기까지 했다. 그 당시에 무 제국을 “세계문화의 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번창했던 무 대륙은 일시에 사라졌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으로 무 대륙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엄청난 비극은 격렬한 화산 용암분출에 이은 강진, 태풍과 함께 시작하였고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발생했다. 육지는 파도처럼 소용돌이쳤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모든 것이 장난감처럼 무너졌고 즉시 용암과 바다 물이 이를 덮어버렸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무 대륙은 태평양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전설로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보면 인간문명이 존재했다는 가능성을 알 수 있다.

해저 유적은 선사문명이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아직 그런 것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현대의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현존하는 역사적 지식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도전은 현재의 이론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과 지구의 역사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이런 명백한 역사적 증거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더 깊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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